3월 1일 주일 저녁.. 
  여느 때처럼 교회 일로 하루종일 바쁘게 보내고 난 뒤, 늦은 밤 컴퓨터에 앉아 네이트온에 접속하고, 구글 리더를 띄웠다. 대화창을 열어 혜란이와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눈으로는 리더에 올라온 글을 읽어 내려갔다.. 

by JK | 2009/03/01 09:07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의 흥행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배급을 맡았던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에서 또 한편의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를 선보였습니다. 재일 조선인 위안부 송신도 할머니의 10년간의 기나긴 싸움을 다룬 다큐멘터리 '나의 ...


  '아 오늘이 3.1절 이었지' 

  하루종일 정신이 없었는지 오늘이 3.1절인지 의식도 못하고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안창호, 김교신, 김구 선생님과 같은 분들의 평전을 읽으며 그래도 나름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부끄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하나님 앞에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싶은데.. 머리로 이해를 하였을 뿐 삶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직도 먼 얘기일 뿐이다... 
라니에게 링크와 함께 메세지를 보냈다.. 

'내일 이 영화 보러가자. 3.1절인데 이런 영화 한편 보고 지나가고 싶어.'

  라니는 흔쾌히 수락을 해 주었다.. 예매한 티켓은 광화문의 미로스페이스. 2일 저녁 8시 반 영화. 독립영화라 그런지 영화를 하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에 약간은 서운함이 느껴졌다. 영화관에는 표를 판매하는 분을 제외하고는 둘밖에 없었다. 넓은 영화관에 둘만 앉아서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둘만 앉아서 관람하기는 흔치 않은 경험이기에 기분이 묘하게 즐거워 지기도 했지만, 더 많은 사람이 보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마음 한켠에 남아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 되어 버렸다.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타이틀이 나타났고, 

송신도 할머니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한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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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artizen.or.kr


  영화는 할머니를 만나는 이야기부터 흘러간다. 영화의 전반부는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회원 몇명의 인터뷰와 그들이 <송신도> 할머니를 만나서 할머니로부터 위안부의 생활을 전해 듣는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전쟁터에서 겪는 할머니의 끔찍한 경험.. 다른 사람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뒤따를 것 같은 이야기..... 전쟁으로 인해 그리고 보살펴 줄 이가 아무도 없어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폭력과 억압속에 망가져버린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 그 아픔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전해져 왔다. 전쟁에 한가운데서 보호받지 못하는 열여섯 애띤 소녀에게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라는 명제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희생을 강요당했고 그것에 반항할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전쟁에 약간의 방해가 된다면 버려져야 하는 도구였고, 이에 버티지 못한 이들은 강물에 몸을 던지는 것 외에는 그 곳에서의 생활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전쟁이 끝났 뒤에도 할머니는 또 다른 고통을 맞이 해야 했다. 할머니에게 사람은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의 잘못된 역사가 만들어낸 아픔을 할머니는 혼자서 위로해야 했고, 고통을 홀로 껴안아야 했다. 일본땅에는 할머니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위로하려고 하는 이도 없었다. 
  재판을 시작하며 누군가가 선물해 준 한복을 내던지며, 30년이 넘게 나를 잊은 나라의 옷이 내게 무슨 필요갸 있느냐.. 이제와서 나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라고 한복을 주는 거냐.. 차라리 기모노를 선물해 주라던 할머니의 말씀이 내 마음을 더욱 쓰리게 했다..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믿느냐" "신은 없다 나는 나만 믿을 뿐이다"라는 말에 반박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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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mestimes.co.kr

  할머니의 요구는 간단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그것이 <송신도>할머니가 원했던 요구사항이었다. 자신의 망가진 삶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이나 물질적인 보상은 의미가 없었다. 이미 흘러버린 세월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할머니는 자신의 마음 속에 그래도 남아있는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는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를 요구했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재판.. 사실 재판을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그에 따르는 어려움과 힘든 과정을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세번의 재판은 할머니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재판을 함께했던 사람들은 법원의 판결을 듣고는 좌절한다. 이건 말도 안된다며 소리를 지르고, 부당한 재판에 눈물을 흘린다. 그 순간에 할머니는 도우려 했던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러한 할머니의 모습에 오히려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 나 역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어쩌면 혼자서 그 많은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야 했던 할머니이기에 또 다른 고통은 할머니에게 견디기 힘든 일은 아니었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이 그만큼 커다란 고통을 겪었었기에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품을 수 있을 만큼 깊어졌기 때문이었던 건지.. 할머니의 재판결과를 수용하는 모습은 전쟁의 피해를 입어 나락의 삶으로 동정받는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당당함에서 또 다른 많은 억울한 이들의 마음을 품고 그들을 대표하여 싸우는 선구자의 모습을 보았다..


"전쟁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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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esportsi.com


  힘든 재판 과정을 감내하면서, 수많은 집회의 앞에서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서 다른 이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을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이 평화의 메세지 하나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할머니는 모든 장소에서 한결같이 얘기한다. 전쟁은 절대로 안된다고..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잊지 말아달라고.. 자신안에 혼자 갇혀 마음의 문을 닫고 외부와 단절되지 않았다.. 할머니의 마음은 식민지로써 고난을 당한 한국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간 중국과 일본 백성들의 고통스런 삶까지 품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전쟁의 아픔과 나라를 빼앗겼던 고통을 잊어버린게 아닌가 싶다... 불과 채 100년이 지나기도 전에 크나큰 아픔을 두번이나 겪어야 했던 우리임에도.. 아직도 전쟁의 아픔을 마음 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그 때 받았던 고통으로 인해 지금도 편안하게 보낼 수 없는 이들이 우리 옆에 그대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의 풍족과 안락함 속에 그 고통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인 것만 같다.. 지금도 많은 지구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있는데.. 그 아픔을 겪어봤던 우리나라가 이런 평화의 목소리를 내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재판을 하기로 결정한 뒤, 그 과정 가운데 자신의 아픔을 함께 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또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통해... <송신도> 할머니의 가슴속 상처는 이미 치유되어 있었고, 할머니의 마음은 이미 재판의 결과를 뛰어넘 어 더 중요한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와 만나 서로를 위로하며 감싸안던 날.. <송신도> 할머니가 한복을 입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장면이 오랜시간 머리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덧붙임 ..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은 지난 번 '워낭 소리' 이후 두번째 보는 것인데, 두 편다 여느 영화보다 더 감동이 있었고 보고 난 후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앞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팬이 될지도 모르겠다.